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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향토문화유산


정민시선생 묘 및 신도비 1
정민시선생 묘 및 신도비 2
정민시선생 묘 및 신도비 3
정민시선생 묘 및 신도비 4
정민시선생 묘 및 신도비
추천수132
  • 주소

    경기 양주시 산북동 산92번지

  • 종별

    향토문화유산

  • 연락처

    031--

  • 홈페이지

상세보기

정민시(1745~1800)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회숙(會叔)이고 본관은 온양(溫陽),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영조 49년(1773)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오랫동안 선혜청에 있으면서 미곡운반과 조세의 수납 사무를 통일하는 등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특히 왕의 보필에 힘써 문물의 개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801년(순조1) 정조의 충신이며 시파(時派)의 거두로서 활동한 그를 벽파(僻派)인 영조비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사리사욕을 꾀했다는 죄로 관직을 삭탈했으나, 아들 성우(性愚)의 상소로 복관되었고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태학지경시(太學志慶詩)》가 있다.

묘는 양주읍 산북 3리 마을 내의 후손 정열씨의 집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100m쯤 떨어진 지점의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난 소로를 따라 올라가면, 16기의 정씨 일가 공원묘지에 이르게 되는데 이 공원묘지를 지나 구릉 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정경 부인 완산 이씨와의 합장묘로서, 봉분의 크기는 직경 550cm, 높이 155cm이다. 묘 앞에는 상석,향로석,묘비와 4각의 장명등 및 양 옆으로 망주석 2기와, 석양 한쌍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묘역이 있는 구릉 하단부에는 사후 정조가 친히 ‘정와 정공민시지장’이라는 어필과 전교를 내려 건립한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비각은 팔작지붕이고 높이 108cm인 4개의 장초석 위에 홍실을 두른 정 측면 각 1칸의 아담한 구조이다. 비는 장방형의 비좌에 비신을 세우고 팔작지붕형의 옥개석을 얹었다.

이용안내

입장료: 없음
주차시설: 없음
장애인 시설: 없음
기타 관광정보 및 외국어 안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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