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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자식에게 썩은 동아줄을 내려줘서는 안 된다
내용 해님달님 설화에서 호랑이에게 쫓기던 오누이는 하느님에게 “저희를 구하시려면 금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세요”라며 소원한다. 오누이에게는 금 동아줄이 내려오고, 뒤쫓아 온 호랑이에게는 썩은 동아줄이 내려온다. 썩은 동아줄을 잡은 호랑이는 줄이 끊어지며, 수수밭에 떨어져 죽는다. 죽창처럼 잘린 수숫대 위로 떨어져 수수밭은 핏빛으로 물들고 만다.

거의 25년 전, 친하지는 않았지만, 항공정비와 관련된 학과에 가겠다고 한 고등학교 동기가 있었다. 녀석의 담임은 이를 결사적으로 막았다. 이유는 아무 비전이 없다는 것이었다. 녀석은 내게도 그 속상함을 토로했다. 물론 결과는 반대였다. 그는 괜찮은 진로를 택한 덕에 지금 동기 가운데 가장 잘 나간다. 만약 담임의 요구대로 원치 않던 진로를 택했다면, 후회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일은 항상 신중해야 하는 법이다. 요즘 진로상담을 하다가 의대를 가겠다고 하는 친구가 있으면 가끔 말릴 때가 있다. 적성에 꼭 맞는 친구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지만, 성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적성에도 맞지 않은 의사가 되겠다고 하는 경우에는 기꺼이 간섭한다. 특히 의대에 가서 생명공학 같은 기초과학 연구를 할 것이 아니라, 개업 의사를 하겠다고 하면, 나는 불편할 만한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래학자들은 디지털화될 미래사회에서는 지난 몇 십년간 은행에서 은행직원들이 대규모로 줄어들었듯, 의사의 수 역시 급감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병원에 찾아가 굳이 진료를 받지 않아도, 건강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수없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은 전문 의학지식조차 디지털화된 세상에서는 몇 가지 앱과 간이 진단기구만으로 직접 의사를 만나지 않고 얼마든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그것이 정당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의사의 대면 진료에 대한 수요가 줄 것이 분명하고, 의료 시장 또한 지금과 판도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미래를 아는 것은 인생에서 헛된 걸음을 하지 않게 해주는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진로상담에서 청소년이나 20대에게 그리 어렵지 않는, 미래학 책들을 읽어보도록 자주 권한다.

지금까지, 이전 세대가 누렸던 안정된 삶은 영구적이지 않다. 한국 사회 역시 머지않아 청장년층이 상당히 살아가기 힘든, 저성장, 소비인구의 절벽상태, 노령화 사회로 진입할 것이다.

나는 진로상담을 하며 답답한 마음이 생길 때가 많다. 많은 부모들이 여전히 자신의 자녀가 교수, 의사, 판사, 변호사 같은 지난 세대의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그 직업이 그 청소년에게 꼭 맞는 것이라고 해도 미래를 잘 예견해보고 신중해야 할 판에, 당사자에게 맞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일을 부모 뜻대로 강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가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더라도, 얼마든 자녀에게 썩은 동아줄을 내려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선생님, 주변 어른, 심지어 신중하지 못한 진로상담가마저도 아이들에게 썩은 동아줄을 내려줄 수 있다. 동아줄을 쥘 당사자가 현명해서 이를 미리 알아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그 후 초래될 고통과 인생낭비는 심대할 것이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나는 상담에서 그런 사연을 수없이 만났다. 존경받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자신의 삶에서 몰입과 긍정적 관여가 결핍될 때 인간은 우울해지고 또 불행해진다고 말한다. 이는 그가 직접 행한 많은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되었다. 그런 이유에서 인생에서 긍정적으로 임할 수 있고, 깊게 몰입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일을 찾는 일은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산성이 많이 떨어지는 일을 하더라도 밥은 얼마든 먹을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업이란 한편으로는 생존과 생계, 삶의 여유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해야 한다.

어릴 적 친했던 한 친구는 화가가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며 그는 진로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그는 지금 후회하고 있다. 최근 내게 혹 자신이 그 당시 진로를 순수미술이 아니라, 디자인 쪽으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말을 한 바 있다. 실제 그때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꿔 여유롭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친구도 여럿 있다. 물론 나는 고흐처럼 살아가는 화가 친구에게 항상 마음이 더 가지만, 어쩌면 그 친구는 지금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나조차도 그에게 너는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고 독려했던 것이 그에게 독이 되었을는지 모르겠다.

그런 이유에서 불신을 조장하기 위함은 아니지만, 나는 진로상담을 받는 청소년들에게 주변 사람 말을 모두 믿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심지어 지금 상담을 해주는 나조차도.

나는 진로상담에서 꽤 다양한 여러 가지 길을 제시하는 편이다. 미래에 겪게 될 후회와 반성의 양을 줄이려면 늘 앞날을 선택하는 일은 대단히 신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상담 받는 청소년의 뇌 유형을 알아보고, 다중지능 검사, 진로적성 검사, 성격 검사를 골고루 실시해서 강점, 재능, 흥미, 삶의 가치 등을 충분히 살펴보고, 그 중간지대에 놓인 다양한 직업군을 다각적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나의 진로탐색 상담은 짧게는 석 달, 길게는 6개월 이상 진행되기도 한다.

그리고 매 상담마다 직업과 미래의 삶을 펼쳐나갈 때 가장 ‘후회’하지 않을 만한 선택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신신당부한다.

내가 청소년과 청년들의 진로상담에서 교과서로 많이 활용하는 로먼 크르즈나릭의《인생학교-일》에서도 진로와 관련해 우리가 가장 염려해야 할 것이 ‘후회’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심리학자가 아닌 철학자답게 그의 진로에 대한 조언은 철학적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지금 우리는 두 가지 후회 가능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첫 번째는 수년 동안 시간과 에너지, 감정을 쏟아부은 직업을 ‘왜 버렸을까’ 하는 후회이고, 두 번째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돌이켜볼 때 전혀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던 직업을 ‘왜 버리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이다. 두 가지 후회 모두 뼈아프지만,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의 일이란 것이, 아무리 최상의 결정을 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후회를 피할 방법이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렇다면 새로운 결정을 내릴 때 이 두 가지 후회 중에서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까?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와 저지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어느 쪽이 그나마 덜 아플까?

최근에 나온 심리연구 결과에 따르면 후자가 정신건강에 더 해롭다고 한다.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만큼 강력한 후회는 없다. 하지 않는 선택은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에서 커져가고, 점점 커진 후회는 인생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나는 매몰비용(지금까지 자신이 자신의 직업을 얻기까지 들인 노력과 비용) 때문에 무척 불만스러운 현재 직업을 쉬이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본인 스스로 이런 후회스러운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주변 사람이나 부모에게서 지금 하는 일이 전망이 좋고, 너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설득을 듣고 그대로 따랐던 경우도 많다.

그러니 한 사람의 행복을 좌우할 수 있는 진로에 대해 온당한 길을 제시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것이 나은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늘도 청소년이나 20대와의 상담에서 혹 내가 썩은 동아줄을 내리는 사람이 아닐지 항상 스스로 자문하며, 또 한편 그 청소년이나 청년이 자신의 앞날을 선택함에 있어 좀 더 신중할 것을, 또 많은 노력과 지혜를 발휘할 것을 당부하고, 또 당부하는 것이다.

전문보기 – 조선에듀
http://edu.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19/20151019014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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