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청소년 자살 소식에 걱정된다는 학부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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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극단적인 선택 돌이키는 건 따뜻한 말 한마디
Q. (자살 경고 신호 어떻게 대처하죠) 중3, 고1 자녀를 둔 40대 주부입니다. 얼마 전 방송에서 자살 경고 신호와 관련된 뉴스를 봤습니다. 청소년 자살 기사를 자주 접하다 보니 청소년 자녀를 둔 엄마로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자살 경고 신호가 무엇인지, 그것이 보였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A. (유가족 81% 징후 모르고 지나쳐) 최근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자살 사망자 121명의 유가족 151명을 면담해 자살자 심리 부검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검이란 사망자의 사망 원인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살자 심리 부검이란 자살 행동을 일으킨 정신의학적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심리 부검 결과는 자살 예방 전략 수립에 중요한 자료로 쓰이게 됩니다. 심리 부검 결과 자살 사망자의 93.4%는 숨지기 전 언어, 행동, 정서 변화 등을 통해 자살 의도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가족의 81%는 이 같은 신호를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살하기 한 달 이내에 정신의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의료기관을 찾는 것도 4명 중 1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신체적인 불편으로 다른 과를 방문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구체적인 통계를 보면 자살 사망자의 88.4%가 정신 건강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그 가운데 우울 장애가 74.8%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사망 한 달 이내에 정신의료기관이나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이용한 경우는 25.1%에 불과했습니다. 외모 무관심, 체중 변화 등 눈여겨봐야 자살 경고 신호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언어 표현, 정서 변화, 행동 변화 등이 있습니다. 언어 표현은 ‘내가 먼저 갈 테니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 같은 죽음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 ‘총이 있으면 편하게 죽겠다’는 자살 방법 언급, ‘천국은 어떤 곳일까’ 같은 사후 세계에 대한 언급, 주변의 사망자에 대한 언급, ‘소화가 안 된다’ 같은 신체 불편 호소가 있었고, 일기장에 ‘자꾸 나쁜 생각이 든다’고 적는 등 편지나 노트에 죽음에 대한 내용을 기재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정서 변화로는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리거나, 웃지 않고 말이 없어지며 무기력해 보이고, 외출을 줄이고 집에서만 지내는 등 흥미를 상실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행동 변화로는 수면 상태나 식욕·체중 등이 변하고, 집중력 저하 등 인지 기능이 떨어지고, 현금을 인출해서 가족에게 전하는 등의 주변을 정리하고, 농약 구입 등 자살 계획을 세우거나, 사망 전 가족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려는 것 같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또 외모 관리에 무관심해지고, 과다한 음주 등 물질을 남용하거나, 죽음과 관련된 예술 작품이나 언론 보도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갑자기 가족 및 지인에게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표현하는 경우 등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고 신호를 느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과거 정신의학 교과서에는 자살 경고 신호를 보일 때 진짜 자살 동기가 있는지 아니면 남에게 보이기 위해 제스처로 자살을 언급하는 것인지 감별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요즘은 이 내용이 빠졌습니다. 일단 자살 경고 신호를 보이면 제스처 성격이 강해도 위험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죽겠다는 이야기를 쉽게 하는 세상이라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상대방이 그런 말을 반복한다면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긍정적으로 살라는 훈계보다 잘 들어줘야 상대방이 자살 경고 신호를 보낼 때 듣는 사람 입장에선 괴롭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무시하거나 아니면 긍정적으로 살라는 식으로 반응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상대방에게 내 감정 전달이 단절됐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죽음에 대해 언급한다면 진지하게 경청을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감 소통을 해야 하는 겁니다. 자살이란 내 삶의 가치가 느껴지지 않을 때 일어나는 극단적인 행동입니다. 반대로 삶의 가치를 조금만 느끼게 되어도 일단 그 순간의 위험은 피할 수 있습니다. 자살 예방에 있어 위기 개입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강 다리에 달려있는 생명의 전화가 한 예입니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도 한 통의 전화로 마음을 돌릴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론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삶을 마감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전화 한 통으로 돌릴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런데 돌릴 수 있습니다. 내 삶의 가치는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것인데 누군가 나를 따뜻하게 공감해주면 그 순간 내 삶이 소중하게 느껴질 수 있고 극단적인 행동을 멈출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 경고 신호를 보내는 사람에게 공감 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자살 경고 신호가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경우는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되고 전문의료기관의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입원도 해야 합니다. 상당수의 자살이 충동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극단적인 순간을 잘 넘기도록 전문가의 손을 꼭 빌려야 합니다. 공감 소통은 기술이 아닙니다. 자살 예방에 공감 소통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공감 소통은 자살 예방을 넘어 타인에게 삶을 살아갈 에너지를 줍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공감받고 있다고 느끼면 그간 나를 괴롭히며 쌓아왔던 마음의 부정적 감성이 풀리며 위로를 받습니다. 내 인생을 힘들게 하는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어도 삶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집니다. 이런 좋은 마음 치료제, 공감이 세상을 가득 채우면 좋을 텐데 생각보다 잘 보이지 않습니다. 공감이란 단어는 흔하게 주변에 넘쳐 나는데 내가 공감 받고 있다는, 포근함의 밀도는 희박하게만 느껴집니다. 공감은 심리적 기술로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마음의 에너지입니다. 따뜻한 감성 에너지가 가득 차면 공감에 관한 심리적 기술을 연마하지 않아도 우리는 주변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너지가 소진돼 버리면 공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줄 에너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무 지쳐 버리면 다른 사람의 공감 에너지를 수용하는 것조차 힘들어집니다. 충전이 되지 않기에 감성 배터리는 계속 소진돼 갑니다. 사람 만나는 게 피곤할 땐 감성 충전을 공감 능력은 사람마다 매우 차이가 납니다. 수학 문제 푸는 실력, 100m 달리기 실력이 차이 나는 것 이상으로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공감이 필요한 세상이기에 공감 능력이 좋은 사람은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공감 능력을 타고난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공감 능력이 좋은 신입 간호사가 병원에 입사하면 환자를 따뜻하고 대하고 주변과도 소통을 잘 하기에 ‘친절상’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친절상 받던 분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감 능력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 소모도 많기에 마음이 지쳐 버리는 소진증후군이 더 빨리 오게 됩니다. 공감 능력이 좋은 것은 매우 좋은 일이나 그 에너지 소모만큼 잘 채워주지 않으면 그 만큼 피로 증상도 빨리 오게 됩니다. 공감은 상대방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끼고 이해하는, 매우 본질적이고 생물학적인 프로세스입니다. 뇌의 활성도를 측정하는 뇌 영상 촬영 기법을 활용한 연구 결과를 보면 공감 능력이 좋은 사람들은 상대방의 고통이 담긴 이미지를 보았을 때 고통을 느끼는 뇌의 부분이 활성도가 더 크게 증가합니다. 뇌의 활성도가 큰 만큼 많은 에너지를 태우며 소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보다 사람 만나는 일이 피곤한가요. 사람들에게 표현은 안 해도 속에서 짜증나고 울컥하는 일이 잦아졌나요. 이런 현상이 느껴지면 사람은 자신을 자책하고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자’며 채찍질하거나, ‘주변이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며 남을 탓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마음의 에너지를 더욱 고갈시킵니다. 마음의 에너지가 소진되었다는 것, 그만큼 남을 공감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마음아 고생했다, 내가 이제 잘해 줄게’라며 남을 공감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나를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전문보기 –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195730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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