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이들이 아프다"…자살 위험 청소년 14만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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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친구들 앞에서 혼자 짜장면 먹는 장면 있잖아요. 옆에서 친구들은 카톡으로 얘기하고. 어떤 기분인지 알 거 같았어요. 말은 섞지도 않을 거면서 단체 대화방에 초대해 뒷담화하는 거, 저도 당해봤거든요."
지난 1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국립중앙청소년디딤센터(이하 디딤센터)에서 학교폭력을 주제로 성장교육이 열렸다. 집단 따돌림을 다룬 영화 '우아한 거짓말'을 보고 나서 그린 그림을 설명하던 중이었다. 김민지(가명)양이 왕따 당한 얘기로 말문을 열자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누구라도 제발 그만하라고 말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죽고 싶을 만큼 힘든데, 선생님은 왜 자기를 귀찮게 하느냐고 해요", "국어, 수학 말고 친구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수업도 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들도 그런 교육, 받아야 해요" 하나둘씩 속에 있던 말을 끄집어냈다. 교육부에 따르면 우울과 불안으로 지속적인 상담·관리가 필요한 '관심군' 학생이 최근 3년간 25만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자살을 생각하는 등 위험 수준이 높은 '우선관리군'이 14만명이다. 그리고 매년 청소년 120여명은 자살을 택한다. 우울과 불안으로 지속적인 상담·관리가 필요한 '관심군' 학생이 최근 3년간 25만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Wee센터, 청소년상담센터, 정신건강증진센터 등 기관에서 추후 조치를 한 학생은 60%에 불과하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학교에서는 따돌림, 집에서는 방치…마음 둘 곳 없다" 이날 오전 찾은 디딤센터는 우울증·불안장애,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학교 부적응, 학대·학교폭력을 겪으면서 마음에 병이 든 청소년 대상 거주형 치료·재활 센터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 쉼터, Wee센터 등 청소년 기관에서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된 청소년들이 정도에 따라 1개월 혹은 4개월 동안 합숙하면서 상담과 함께 음악·미술·무용·명상 등으로 특수 치료를 받는다. 박가영(18·가명)양은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하다 디딤센터를 찾았다. 가영양은 "자살만 하지 않았을 뿐 내 얘기가 영화와 비슷해 공감되는 게 많았다"며 말을 꺼냈다. 그는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했고 집에서는 세살 위인 오빠가 하녀 대하듯 나를 괴롭혔다"며 "어디에도 마음 쉴 틈이 없고 숨이 막혔다"고 털어놓았다. 오빠에 대한 미움이 커지면서 남자 친구들도 기피하게 됐다. 그는 "오빠가 너무 무서우니 남자는 다 싫었다"며 "남자아이들과 이야기할 수도, 남자 선생님과 눈을 마주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고교에 입학한 이민우(17·가명)군에게도 지난 1년은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아는 친구 하나 없는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기란 쉽지 않았다. 민우군은 "1년 동안 거의 말을 안 했다. 그러다 보니 웃음도 잃었다"며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항상 남들을 의식했고 나중에는 악수도 못 할 정도로 사람을 피했다"고 말했다. 디딤셈터에서 4주간 생활한 이들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민우군은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도 싫어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며 "나를 인정하니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칭찬을 많이 해주고,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체험활동이 많았던 점이 좋았다"고 꼽았다. ◇"막말·욕설을 내뱉는 부모도 잘못…교육받아야" 박영균 디딤센터 원장은 가족의 해체, 입시 위주 교육으로 아이들의 마음이 병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는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돌봤지만 지금은 맞벌이 가정, 한부모 가정이 늘면서 그 역할을 학교가 대신한다"며 "하지만 학교도 입시 위주 교육을 하면서 아이들의 감정이나 꿈이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민우군도 "학교에서 친구를 사귈 시간은 쉬는 시간 10분"이라며 "내게는 마음의 문을 열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토로했다. 가영양도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닌데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 없이 앉아만 있다"며 "다 같이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유은숙 디딤센터 부장은 "아이들은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발달하는데 방임하면 사회성이 부족해진다"며 그 징후로 대인기피, 낮은 자존감, 인터넷·게임 몰입, 비행을 들었다. 감정 표현과 조절에 서툴다 보니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기도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유 부장은 "우울함이 깊으면 '나를 좀 봐달라'며 자해를 하고, 심각하면 자살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약물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치료·재활하는 시설은 많지 않다. 지난 2012년 10월 디딤센터가 문을 연 뒤 지난해까지 다녀간 청소년은 총 2804명에 불과하다. 전국에 하나밖에 없다 보니 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에는 디딤과정 모집 경쟁률이 5:1까지 올랐다. 유 부장은 "제대로 된 치료·재활 센터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며 "공부를 못해도 다른 꿈을 키울 수 있고 아이들의 행복과 존엄을 생각하는 교육으로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가정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녀에게 막말·욕설을 내뱉는 부모도 있다. 그러면 아이는 상처를 받거나 그대로 따라 한다"며 "부모도 여유가 없고 지쳐있지만 방법만 알면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방치된 채 성년이 되면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청소년기에 치료를 통해 잘 이끌어주면 훗날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은하 기자(letit25@) 전문보기 – 뉴스1 http://news1.kr/articles/?25666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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