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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지만 강한 농업고 ‘풀무학교 이야기’
내용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부모님 일을 이어가고자 축산학과로 일찌감치 진로를 정하고 논문도 바이오가스 에너지화에 대해서 썼습니다. 저는 무리하지 않으나 가득 채워지는 모습을 참현 군에게서 배웠습니다."

풀무학교 정승관 교장이 창업식에서 한 학생에게 들려준 얘기다. 홍성의 작은 농업기술고등학교인 풀무학교에는 학업을 마쳤다는 의미인 '졸업' 대신, 그간의 배움을 기초로 이제부터 시작하자는 뜻에서 '창업'이라는 말을 쓴다. 지난해 창업한 학생 중에는 풀무학교 최초로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에 진학한 경우도 있다. 그가 선택한 전공은 바이오시스템 조경학 계열. 1년이 지나고 다시 수시모집이 시작된 지금, 풀무학교에는 조경학도를 꿈꾸는 또 다른 학생이 있다. 3학년에 재학 중인 강누리(19) 학생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11일 신입생을 위한 학교설명회에서 만난 누리는 학교교정을 안내하며 '풀무에서의 3년'에 대해 들려줬다.

◆ 풀무에서 자신의 진로를 찾다 = 누리는 대입 준비를 하기 전에 자신의 진로부터 명확하게 정했다. 대학 진학을 넘어서 평생 자신이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은 것. 적성은 나중에 찾아도 되니 일단 진학부터 하고보자는 보통 사람들의 대입 전략과는 전혀 다르다. 풀무학교에서는 일단 진로부터 명확하게 잡은 다음,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면 진학을 결정한다.

누리가 진로를 결정하게 된 계기는 2학년 실습 과목인 조경ㆍ원예수업이었다. 학교 안 화훼 온실에서 꿈을 키운 셈이다. 2학년 때 매일 공원 설계나 조경 설계를 공부하면서 고등학교 졸업 후 관련 분야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을 가졌다. 대학에서 조경학 뿐만 아니라 인문학 등 다양한 학문을 접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갈 계획이다. 진로 결정을 일찍 내릴 수 있었던 데에는 학교의 철저한 진로지도 도움이 크다. 이 학교의 3학년 학생들은 '진로와 직업'이라는 수업시간을 통해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상담한다. 누리를 비롯한 풀무학교 학생들에겐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보다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 수능공부 안 해도 대학 갈 수 있다 = 풀무학교에서는 수능시험을 위한 공부를 따로 시키지 않는다. 수능을 준비하려면 저녁 일정이 모두 끝난 다음, 2시간 동안의 묵학(자율학습)시간을 이용해 공부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누리를 비롯한 풀무학교 아이들에게 수능만이 대학에 들어가는 유일한 문은 아니다. 실제로 풀무학교 아이들은 정시모집보다 수시모집을 통해 대학에 진학한다. 입학사정관 전형 수시모집의 경우, 입시 공부와 스펙 관리에 매달려온 다른 아이들보다 누리처럼 다양한 경험과 명확한 진로를 경험해 온 학생이 더 각광을 받는다. 그렇다면 누리는 풀무학교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 남다른 경험으로 가득한 풀무에서의 3년 = 누리가 들려준 풀무에서의 3년은 말 그대로 역동적이다. 학교생활을 통해 경험한 수많은 이야기들은 자기소개서라는 틀 안에 다 구겨 넣기 힘들어 보일 정도다. 누리는 1학년 때 채소밭을 가꾸다가 벌어진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한 친구가 실수로 파밭에 물을 틀어놓고 그냥 가는 바람에 밭이 논이 돼버렸어요. 수업도중 모두 나와서 물 퍼낸다고 엄청 고생했는데, 그렇게 실수하면서 배웠던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재배한 파, 상추, 배추, 시금치가 식탁에 오를 때의 감격도 잊을 수 없다. 누리가 땅을 일궈 키운 것은 채소뿐만이 아니다. 직접 모내기해서 벼농사도 짓고, 학교 안 축사에서 소, 돼지, 닭도 키웠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풀무학교에서 배운 것은 농업기술 그 이상. 자연이 움직이는 원리를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깨달았고, 땅을 사랑하는 마음도 자리 잡았다.

◆ 전인교육을 목표로 인재 양성 = 풀무학교에서 "일만 하면 소가 되고,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된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일과 공부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창립자의 정신을 따라서 풀무학교 학생들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 누리는 며칠 전 완공된 도서관을 신나게 자랑했다. 그 동안 학교에서 보유하고 있던 책들을 모두 모아서 학생들이 언제나 찾아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고 한다. 풀무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모든 교과에서 책 읽기를 통한 지도를 지향하는 등 독서 지도를 중점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교 행사에 모든 학생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전교생이 83명인 작은 학교이기에 가능하다. 소소한 문제 하나까지 학생들이 직접 결정하는 과정에서 풀무학교의 아이들은 '대화하고 토론하는 법'을 배운다.

◆ 행복한 학교생활로 대학 진학까지 = 폭넓은 독서와 토론의 경험을 잘 발휘하면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더 유리하다. 대입에 도전하는 누리는 두렵지 않다. 풀무에서 보낸 3년의 시간동안 경험한 자연과 사람, 책을 통해서 한층 깊어졌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누구보다 뚜렷하게 가지고 있다. 대학에 가기위해 기를 쓰고 입시공부에 매달리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어느 대학에서나 원하는 인재로 성장했다.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는 2011년도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지난 11일 설명회를 열었다. 학교 강당 안은 전국에서 모인 200여명의 학부모와 학생들로 꽉 들어찼다. 풀무학교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행복한 학교생활과 대학 진학이 결코 배치되는 문제가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출처: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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