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선사부도 및 석등
지공은 1326년 3월부터 1328년 9월까지 고려에 머물면서 여러 사찰을 방문하였는데, 그 중에서 회암사는 그가 불법을 펼친 중심도량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의 사후에 회암사에 지공의 부도를 건립하였다.지공선사부도의 건립연대에 대해서는 『목은집(牧隱集)』의 「서천제납박타존자부도명(西天提納薄陀尊者浮屠銘)」과 『고려사(高麗史)』의 내용을 근거로 1372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며, 『순조실록(純祖實錄)』이나 무학대사홍융탑비의 내용에 따라 1828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지공선사부도는 높이 3.65m의 규모로 팔각지대석 위에 3단의 기단을 두고, 그 위로 탑 신부와 상륜부가 있는데 파손이 거의 없는 완전한 상태이다. 2매의 석재를 사용하여 팔각으로 만들어진 지대석 위에는 측면을 둥글게 다듬어 둥근 형 태를 띠는 중대석이 있다.
탑신부도 전체적으로 둥글고 넓적한 모양을 띠는데 윗부분과 아랫부분은 편평하게 다듬 었다. 옥개석은 팔각이며 기울기가 급한 편이다.
옥개석에는 이전 시기의 부도에서 나타나던 목조건축 지붕의 세부적인 표현은 없다. 상륜부의 노반은 팔각인데 2단으로 구성되었으며 3단의 둥근 보륜을 더하여 장식하였고 그 위에는 보주를 얹었다.
지공선사부도비
지공선사비는 고려 우왕 4년(1378) 회암사에 건립되었으나, 조선 순조 21년(1821) 광주의 유생 이응준(李膺俊)에 의해 파괴되어 1828년 다시 건립하였다.
이색(李穡)이 비문(碑文)을 지었고, 이희현(李羲玄)이 글씨를 썼다.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
나옹선사부도는 높이가 약 3.6m이며, 그 형태는 우리나라 부도의기본적인 형태인 팔각 (八角)을 이루고 있지만 탑신부와 기단 중대석이 구형(求刑)이라는 점은 이전 시기의 부 도 형식과 다른 차이점이다.
또한 탑신에 비해서 기단부와 옥개부가 크고 높은 편이라는 것도 특이하다.
상륜부는 둥근 보륜(寶輪)을 4단으로 쌓고, 노반(露盤)과 보주(寶珠)를 놓았다.
이와 같이 나옹선사부도는 장식적인 요소가 거의 없으면서 탑신부와 기단 중대석이 구형 (求刑)이라는 점은 나옹선사의 스승인 지공선사부도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특징은 고려말기에 처음 나타나며 이후 조선전기에 새로운 부도형식으로 자리매 김한다.
한편 나옹선사부도 앞에는 앞쪽으로 두 개, 뒤쪽으로 한 개의 네모난 받침을 두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널따란 판석을 놓아 석상(石床)을 마련하였는데, 일반적으로 부도 앞에 석상 을 두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앞의 석등은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형태를 띠는데, 화사석(火舍石)과 간주석 (間柱石)이 옥개석에 비해서 매우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어 투박해 보이기도 한다.
단순한 형태의 석상과 석등을 예배와 배례의 대상물 앞에 일직선을 이루면서 배치하는 것은 고려후기의 공민왕릉에서 볼 수 있으므로 왕릉(王陵)의 구조와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