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암사지에 자리한 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까지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며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잘 남아있다.
상륜부까지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며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잘 남아있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을 살펴보면 1464년(세조 10) 4월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 1396~1486)는 회암사 동쪽 언덕에 석종(石鐘)을 건립하고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사리(舍利)를 안치하며, 법회를 열어 『원각경(圓覺經)』을 강의하였다고 한다. 이날 저녁 여래가 공중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사리가 분신(分身)하여 수백여 개가 되는 등의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여기서 석종은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으로 현재 건립 위치와 일치하고 있다. 이렇게 조선전기에 건립된 탑은 발굴조사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던 탑으로 파악되고 있다. 더불어 탑에 새겨진 용, 기린 등 뛰어난 조각과 치석수법은 조선 전기 왕실발원 석조물과 친연성을 보이고 있으며, 조선시대 일반적인 불탑과 차별되는 형태를 가진 새로운 불탑 양식의 대표적인 사례로 파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