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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0세 맞은 은인(恩人)'과 70년 만에 해후
내용 1939년 '윈턴 열차'로 구출된
프라하 유대인 어린이 22명
669명의 목숨 구한 윈턴… 아내에도 40년간 선행 숨겨
'영국의 쉰들러' 칭송엔 '과분한 찬사' 몸 낮춰
1938년 12월 영국 런던에 사는 당시 29세의 주식중개인 니콜라스 윈턴(Winton)은 스위스로 스키 여행을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발 3일 전, 체코슬로바키아 동부의 한 유대인 난민캠프에서 일하는 친구 마틴 블레이크(Blake)의 전화를 받았다. "여행을 취소하고, 여기 일 좀 도와주게."

이 난민 캠프는, 당시 나치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 서부 수데텐란트(Sudetenland) 지역을 병합해 유대인 탄압 정책을 펼치자 이곳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동부로 몰려들면서 만들어졌다.

윈턴은 직접 이 캠프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충격받았다. 특히 부모와 헤어져 난민 캠프에서 혼자 지내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체코슬로바키아 전역이 곧 독일 수중에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윈턴은 유대인 애들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윈턴은 런던으로 돌아오자마자, 영국 정부에 이들 어린이를 위한 비자를 발급해달라고 매달렸다. 이들을 입양할 영국인 가족들도 일일이 구했다. 끝없는 서류 작업의 연속이었지만, 윈턴은 끈질겼다.

마침내 정부의 허가가 떨어졌다. 그는 1939년 3월부터 8월까지 8차례에 걸쳐 모두 669명의 아이를 영국으로 데려왔다. 그해 9월 3일, 유대인 아이 250명을 태운 아홉 번째 기차가 프라하를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이틀 전(1일)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중단됐다. 250명은 결국 전쟁 중에 모두 숨졌다.


윈턴의 업적 70주년을 기념해 당시 유대인 아이들의 '기차 여행'을 그대로 재연한 행사가 열린 것이다. 이 열차는 지난 1일 체코 프라하를 출발해 3일 만에 런던에 도착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프라하역에선 윈턴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지팡이를 짚고 일어선 윈턴은 "70년 전, 그 많은 유대인 아동을 어떻게 입양시킬 것인가가 큰 문제였다. 모든 게 잘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리버풀 스트리트역에 모습을 드러낸 22명과는 지난 70년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윈턴의 '선행(善行)'은 1988년 그의 아내 그레타(Greta)가 집 다락방에서 우연히 이상한 서류가방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묻혀 있었다. 그레타가 발견한 건 그가 구했던 유대인 아이들의 명단과 그 아이들이 쓴 편지들을 보관한 가방이었다. "아내도 40년 동안 그 일을 전혀 몰랐죠. 가족끼리도 얘기하지 않는 것들이 있잖아요."

아내는 이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그를 설득했다. 마침내 그해 BBC 방송 '그게 인생이야(That's Life)'에서 윈턴은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던 '아이들'과 함께 출연해 당시 일을 처음으로 고백했다. 2003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토니 블레어(Blair) 전 영국 총리는 윈턴을 '영국의 쉰들러'로 칭하기도 했다. 오스카 쉰들러(Schindler)는 2차 대전 중 유대인 1200여명을 구한 독일인 사업가다.

그러나 윈턴은 여전히 겸손하다. 그는 "난 쉰들러가 아니다. 쉰들러와 달리, 나는 내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은 아니었다"며, "전쟁 전에 일어났던 모든 것은 전쟁 자체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 영국 런던의 리버풀 스트리트 역에서 4일 니콜라스 윈턴(안경 쓴 이)이 1930년대의 기차 모델을 그대로 본뜬‘윈턴 기차’앞에 서 있다. 윈턴은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 나치 독일의 위협을 받던 유대인 아동 669명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영국으로 데려왔다. 그의 업적 70주년을 기념해,‘ 윈턴 기차’가 당시 윈턴 덕에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을 태우고 지난 1일 체코 프라하를 출발해 런던까지 달렸다./로이터 뉴시스 그리고 70년이 흐른 지난 4일. 영국 런던의 리버풀 스트리트 역으로 당시 1930년대 모델을 그대로 본뜬 증기기관차 한 대가 들어왔다. 노인 22명이 열차에서 내리더니, 휠체어에 앉아 이들을 맞는 한 노인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밴드의 축하곡이 울렸다. 이 '노인'들은 1939년 당시 윈턴 덕분에 목숨을 건졌던 유대인 아이들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이는 올해 100세가 된 윈턴이었다.

원정환 기자 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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