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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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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람 회암사 262 이미지
대가람 회암사 262
*본 전시는 2024년 9월 11일(수)부터 22일(일)까지 사전운영함을 알려드립니다. **전시 연출과 장비 점검으로 인하여 소음이 발생할 수 있으니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전시개요> 양주 회암사지 유적은 동아시아 불교에 유행했던 선종사원의 전형을 증명하는 가치가 인정되어 지난 202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불교유산입니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중기까지 융성하게 번영한 회암사는 현재 터만 남아 있는데, 옛 회암사의 모습을 증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자료가 바로 목은 이색이 지은 「천보산회암사수조기」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천보산회암사수조기」의 내용을 소개하고, 그 안에 담긴 옛 회암사의 모습과 세계유산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부> 고려 왕실이 지향한 이상적 도덕 정치 그 중심에 있던 회암사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불교를 억압하던 분위기 속에서도 자리를 굳게 지켰습니다. 태조 이성계와 효령대군 그리고 정희왕후까지 많은 왕실 인사들이 회암사의 중창을 주도하며 회암사는 전국 제일의 대가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2부> 현대 우리나라의 주요한 사상으로 자리한 유교의 출발점은 고려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원나라에서 유학하던 고려의 학자인 안향(安珦, 1243~1306)은 고려에 성리학을 도입했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시대가 되자 성리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변모하면서 불교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사대부 중에서는 여전히 불교에 심취한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요 불교계 인물들과 학문적으로 교유하였고, 서로의 사상을 존중하며 조선의 불교 부흥에 기여하였습니다. <3부> 기록을 남기는 것에 소명 의식을 가진 목은 이색은 성리학을 근본 이념으로 삼은 성리학자이자 누구보다 불교에 대해 깊게 이해한 고려의 대학자였습니다. 목은 이색은 평소에 친분이 있던 회암사의 주지 윤절간의 부탁을 받아 262칸에 달하는 회암사의 전경을 글로 남겼으니, 바로 「천보산회암사수조기」입니다. 옛 회암사의 건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천보산회암사수조기」의 글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대가람의 전경을 마치 그려내듯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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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사람, 양주 이야기 이미지
양주 사람, 양주 이야기
**본 전시는 2024년 8월 25일(일)까지 연장운영함을 알려드립니다. 경기 북부의 본가 "양주"는 서울과 한반도 북부를 연결하는 요충지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가진 도시입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양주는 그만큼 수많은 성쇠를 겪어 온 지역으로, '양주목'과 '양주군'을 거쳐 어느덧 '시' 승격 20주년을 맞이하며 경기북부의 거점 도시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양주시 이전의 역사를 되새겨 시 승격의 당위성을 살피고, 앞으로의 새로운 미래상을 조망해보는 전시를 마련하였습니다. 이곳에 살아온 사람들이 이야기를 통해 역사가 증명해온 양주지역의 중요성 및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 1부 양주목 조선시대 양주목은 경기북부의 요충지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양주목은 함경도에 부임하는 감사와 한양에 물건을 팔러 가는 상인들이 거쳐가는 일상적인 장소이자 조선 왕릉의 주요 소재지였습니다. 이처럼 양주목 백성의 삶은 한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 2부 양주군 양주는 '군'으로의 변화와 함께 대읍이었던 모습은 점차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수도의 지근거리에서 국난극복에 일조하며 경기 북부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양주 그리고 양주 사람들의 역사는 '시'로 승격된 현대 양주의 정체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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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말고 기린 이미지
기린 말고 기린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 "기린"의 이름은 원래 주인이 따로 있었습니다. 기린은 예로부터 상서로운 길조를 의미하는 상상 속 동물이자 성인의 출현을 은유하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양주 회암사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 조선왕실과 당대 불교계에서 회암사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익숙한 동물이 아닌, 상서로운 존재 "기린"에 대한 전시를 마련하였습니다. 기린 麒麟 Qilin 1. <동물> 기린과의 포유류. 키는 6미터 정도로 포유류 가운데 가장 크며, 누런 흰색에 갈색의 얼룩점이 있다. 목과 다리가 특히 길고 이마 양쪽에 짧은 뿔이 있으며, 3~4월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초원에 떼 지어 사는데 아프리카 특산이다. (학명) Giraffa camelopardalis 2. <민속> 성인이 이 세상에 나올 징조로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 속의 짐승. 몸은 사슴 같고 꼬리는 소 같고, 발굽과 갈기는 말과 같으며 빛깔은 오색이라고 한다. 3. <천문> 천구의 북극 가까이에 있는 기린 모양의 별자리. 밝은 별이 없어 눈에 잘 띄지 않으며, 2월 초순 저녁에 자오선을 통과한다. - 1부 기린, 상상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기린은 원래 아프리카 대륙에 살던 특산종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년 전 '정화의 대원정'을 통해 중국에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상상 속 기린은 원래 성인의 출현과 태평성대의 징조를 상징하는 동물로, 중국의 성인 공자의 출생과 말년에도 등장하는 등 고대 중국에서부터 오랫동안 신성한 존재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 2부 기린, 상징하다 한반도에서 기린과 관련된 이야기는 삼국시대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고려와 조선에서는 궁궐 내에서 높은 격을 상징했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불법의 최고 가치를 의미하는만큼 양주 회암사지에서 나타나는 기린은 불교미술의 정수와 유교적 세계관과의 조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3부 기린, 발견하다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 기린은 민화의 주요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또한 한반도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등 동아시아권에서는 상호나 상표에 등장할 정도로 대중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린은 현대사회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다양한 분야에 전승되면서 여전히 평화와 행복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제 기린은 상상을 넘어 살아있는 '문화의 아이콘'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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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전시 - 회암사지 그리고 양주 이미지
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전시 - 회암사지 그리고 양주
양주의 대표 역사유적인 “양주 회암사지”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중기까지 전국 최대 규모의 사찰 ‘회암사’가 있던 자리입니다. 오랜 기간의 발굴과 정비를 통해 광활한 사역에서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유적의 문화유산적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10년간 다양한 연구·전시·교육을 진행하였고,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라는 결실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이하는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양주의 유일한 공립박물관으로서 지역의 역사·문화를 후손에게 전승하는 박물관의 소임을 다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이 10년간 걸어온 길을 소개하는 자리이니 방문하시어 앞으로 박물관이 걸어갈 길을 함께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 1부 대가람, 빛을 되찾다 양주 회암사지 유적은 1964년 6월 10일, 사적 128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시굴 조사를 시작으로 2019년 13차 발굴조사까지 20년이 넘는 조사연구와 정비작업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양주시는 회암사지 종합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단계별 투자계획에 따라 토지매입, 발굴조사, 박물관 건립, 유적 정비, 공원화 사업, 단지 정비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수습된 유물들은 발굴지 옆 ‘양주 회암사지 발굴자료관’에 임시로 보관하였고 회암사지박물관(2012년 개관, 1종 전문 박물관 등록)이 건립되며 출토유물들은 ‘출토유물 관리권 지정’에 따라 박물관에서 보관‧관리하게 되었습니다. 대가람 옛 회암사의 흔적이 일반 대중과 만나 빛을 발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입니다. - 2부 대가람, 양주를 품다 그간 박물관에서는 유적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심도 있는 연구 수행과 철저한 유물관리, 전시, 교육 등 박물관의 기초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왔습니다. 더불어 양주시의 공립박물관으로서 양주의 역사문화와 관련된 모든 분야와 유적 및 보호구역 전체를 박물관의 활동 대상으로 확대하였습니다. 약 7년간의 노력을 통해 잠정목록 등재라는 성과를 거둔 유네스코 세계유산 추진사업, 양주 회암사지 왕실축제, 누구나 자유롭게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잔디공원 관리 등 회암사지를 학술적·대중적으로 손꼽히는 명소로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앞으로의 10년 역시 양주 회암사지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본 등재라는 큰 목표를 향해 대중과 함께 다양한 문화사업을 추진하며 경기북부의 대표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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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잠정목록 선정 기념전시 - 양주 회암사지 세계유산을 꿈꾸다 이미지
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잠정목록 선정 기념전시 - 양주 회암사지 세계유산을 꿈꾸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15건의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국내문화, 자연의 유산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 받았습니다. 2022년 1월, 양주시를 대표하는 역사유적인 양주 회암사지가 마침내 세계유산 등재에 도전할 수 있는 잠정목록에 선정되었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에서는 양주 회암사지의 가치와 선정 과정을 공유하는 전시를 마련하였습니다. 양주 회암사지의 잠정목록을 축하해주시고, 세계유산으로의 새로운 도전을 함께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 1부 유네스코 유산 유네스코는 인류가 보존해야 할 각종 문화, 자연, 기록을 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합니다. 양주 회암사지는 고고유적 단독유산으로서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세계유산(문화유산 분야) 잠정목록으로 선정되었고, 특히 폐사지로는 처음으로 세계유산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 2부 세계유산적 가치 양주 회암사지는 14세기 동아시아 불교 선종의 수행 전통 및 공간구성 체계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고고유적 입니다. 동시에 건물터와 고승 관련 기념물의 잔존은 고려의 선종이 조선으로 이어진 약 200여 년간 불교 선종 문화의 전승과 발전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 3부 세계를 향한 첫걸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는 양주 회암사지는 지난 7년의 노력으로 잠정목록 선정이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본 등재까지 양주시와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문화재위원회의 권고사항 등을 이행하며 회암사지의 보존 및 가치 활용과 세계유산을 향한 행보를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 전시 기간이 22/10/3 까지 연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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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이미지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양주 회암사는 왕실의 원찰로서 많은 비호와 후원을 받았던 대사찰이었습니다. 웅장한 규모와 위세에도 불구하고 소실되어 오랜 세월 방치되어 오다가 1997년 정밀 조사를 시작으로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편 언덕에는 1464년 효령대군 이보에 의해 세워진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만이 터만 남은 대지 위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번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특별전시에서는 2021년 6월 보물 제2130호로 승격지정된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을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사리탑이 지닌 보물로서의 가치가 과연 무엇일지 이번 전시를 통해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 1부 부도탑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揚州 檜岩寺址 舍利塔)은 원래 양주 회암사지 부도탑(楊州 檜岩寺址 浮屠塔)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회암사의 폐사 이후 훼손과 함께 탑 일부가 무너져 방치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으나, 광복 직후 회암사의 스님과 주민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습니다. 1974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제52호)된 이후 1999년 발굴 및 해체 복원조사와 2012년 보존처리를 실시하였고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2부 사리와 사리탑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은 1464년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각법회(圓覺法會)를 계기로 건립된 진신사리탑(眞身舍利塔)입니다. 현재 진신사리가 봉안(奉安)된 것으로 알려진 탑은 대략 10여 기로 석종형·석탑형·팔각원구형 등 3가지 유형이 확인됩니다. ◻ 3부 사리탑의 재발견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은 조선 전기 사리탑의 양식을 살피는데 기준점이 되고 있으며, 역사적·학술적·조형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어 2021년 6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130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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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 : 회암사의 겨울나기 이미지
온돌 : 회암사의 겨울나기
전 시 명 : 온돌 : 회암사의 겨울나기 (Ondol : Spending Winter at the Hoeam Temple) 전시기간 : 2019. 11. 08.(금) ~ 2020. 02. 09.(일) (※ 별도 개막식 없음) 전시장소 :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기획전시실 전시구성 : 1부_추위를 피하다 / 2부_돌을 데우다 / 3부_온기를 채우다 전시내용 : 온돌의 역사와 구조 등 정보를 알리고 회암사지 출토 온돌 현황 및 구조 전시 □ 전시개요 방바닥의 열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난방시설, ‘온돌溫突’은 옛날부터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2018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된 온돌은 우리나라 건축 및 생활양식에 영향을 미쳐왔으며, 산중사찰에서 역시 주요 난방시설로서의 기능을 담당하였습니다. 양주 회암사지(사적 제128호)는 최대 3천여 명이 머물렀던 대사찰로, 예불 공간과 주거 공간 등 82동의 많은 건물이 3만여㎡에 걸쳐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온돌시설이 확인된 38개의 건물터들은 우리나라 단일유적 내 최대 규모의 온돌 유구 군으로, 옛 회암사에 머물렀던 많은 사람들이 겨울나는 생활을 상상할 수 있게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암사지 온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추위를 나기 위한 난방의 종류와 역사를 살펴보고, 우리나라 난방의 특징인 온돌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회암사지 온돌의 현황 및 가치를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전시장에 재현된 온돌방의 구조와 온기를 통해 조상들의 겨울 나는 지혜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전시 줄거리 ㅇ 1부 추위를 피하다 기상와 기후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삶의 방식과 문화를 형성시켰다. 추위극복에 대해 동서양에서는 나름의 난방형태를 발전시켜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선사시대부터 화덕, 부뚜막 등을 통한 난방시설을 사용해왔다. 특히 침상 등 부분적으로 바닥면을 데우는 난방시설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중국, 몽골 등 동북아시아와 유사한 문화권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반면 서양에서는 실내에서 공기를 데우는 화덕이나 벽난로와 같은 난방시설이 주를 이루었다. ㅇ 2부 돌을 데우다 온돌(溫突)은 순 우리말인 ‘구들’을 표현한 한자어로, 선조들은 돌에 열을 가하면 일정시간 온기가 지속되는 속성을 파악하여 바닥에 돌을 깔고 이를 데워 온돌을 사용하였다. 온돌은 아궁이와 굴뚝, 그리고 구들장으로 이루어지는데, 역사 속 지식인들이 온돌에 대한 각종 폐단과 걱정거리를 논의할 정도로 사회 전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추운 산중사찰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온돌이 사용되었고, 오랜 시간 한반도의 겨울을 책임지는 중요한 난방시설로 자리하고 있다. ㅇ 3부 온기를 채우다 양주 회암사지에서는 우리나라 단일유적 중 가장 많은 수의 온돌유구가 확인되었다. 총 38개에 이르는 많은 건물지에는 난방 또는 간단한 취사까지 겸할 수 있는 아궁이와 구들이 남아있다. 특히 여러 형태의 온돌이 용도가 명확한 유구에 많이 남아있는데, 이중 많은 승려들이 참선하던 공간 서승당 건물지에서는 ㅌ자형의 탁상구조가 출토되어 효율적인 온기보존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시장 내에서는 서승당 내부를 재현한 연출공간에서 온돌방의 온기체험 및 가상승려와의 참선활동 체험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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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의 어떤 하루 이미지
절집의 어떤 하루
양주 회암사지(사적 제128호)는 고려 때 창건되어 조선 전기까지 당대 가장 큰 위용을 자랑하던 대사찰이었습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최대 3천여 명의 사람들이 머물렀다 하는데, 현재 남아있는 약 3만㎡의 넓은 유적을 바라보노라면 그 말이 가히 이해가 될 정도라 하겠습니다. 대량의 온돌, 거대한 공중화장실, 커다란 맷돌 등 유적 곳곳을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활했던 흔적을 지금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땅 속에 묻혀있었기 때문에 건물은 물론, 많은 유물 중에서도 옛 회암사의 생활상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궁금증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암사를 무대로 한 가상의 어떤 하루 이야기를 설정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머물렀을 대가람의 하루 이야기를 한편의 동화를 읽는 마음으로 관람해주세요.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절집의 일상을 이해하고, 그 일상을 채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수백 년 전 회암사의 생활상을 직접 머릿속에 그려보시길 바랍니다. -------------------------------------------------- ● 전시기간 : 2019.05.31(금) ~ 2019.08.04(일) ● 관람시간 : 09:00 ~ 18:00 (17:00 입장마감) *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1시간 연장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 전시내용 1부 하루의 시작 - 동자는 이른 새벽부터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난다. 절에 중요한 손님이 온다는 기대감에 동자는 법당으로 향한다. 불전사물의 울림을 들으면서 부처님께 아침예불을 올리고 나서 동자는 하루의 일을 시작한다. 2부 마음 닦기 -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백장청규』)는 말처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 절 안팎을 청소하기 시작하고, 동자도 뒷간 청소를 나선다. 뒷간은 청소할 때는 힘이 들곤 하지만, 농사의 기본인 거름을 생산하는 즐거운 일이다. 농사, 청소, 음식준비 등 여러 노동으로 부산하게 돌아가는 절집의 광경을 살펴보고, 동자는 든든하게 공양을 마친다. 3부 손님 맞이 - 오늘은 나랏님이 절집에 방문하시는 날이라 모든 경내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큰 스님들은 평소보다 위풍당당하게 가사장삼을 걸치고 돌아다니시고, 여러 사람들이 곳곳에서 손님맞이에 한창이라 절 내부에 즐거운 광경이 가득하다. 동자는 여기저기 즐겁게 둘러보다가 먼발치에서 임금님의 행차까지 눈에 담았고, 특별했던 오늘 하루를 마음속에 간직하며 잠이 든다. 문의) 031-8082-4172, 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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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散散 : 부서진 뒤 알게 된 것들
양주 회암사지(사적 제128호)에서는 1만 점 이상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 중 다수의 유물은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 적지 않은 훼손을 겪은 채 발굴되었습니다.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는 산산조각 난 유물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외형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오랜 세월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 중 ‘깨지고 부서져 완전치 못한’ 유물들이 종종 가치가 절하되고 외면을 받기도 하는 실태에 주목하여 새로이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합니다. “문화유산의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박물관 및 우리 스스로에게 답을 찾아볼 수 있는 이번 전시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 * 9/11(화)에 열리는 개막식은 무료입장입니다. ● 전시기간 : 2018.09.11(화) ~ 2019.03.03(일) ※ 개막식 : 9. 11.(화) 오후 4시 ● 관람시간 : 09:00 ~ 18:00 (17:00 입장마감) / 09:00 ~ 17:00 (11월~2월) *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1시간 연장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 전시내용 1부 과거에서 현재로 - 작은 조각의 출토와 그 안에 숨겨진 조형미 2부 현재에서 미래로 - 보존, 복원, 복제를 통해 활용되는 유물의 존재가치 확인과 박물관의 역할 3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세대 - 박물관 수장고의 유물관리현황과 유물복원 미디어체험 문의) 031-8082-4172, 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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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고을 양주(양주 민속전시-국립민속박물관 공동기획전) 이미지
큰 고을 양주(양주 민속전시-국립민속박물관 공동기획전)
양주회암사지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은 양주의 생활문화를 주제로 공동기획전 ‘큰 고을, 양주’를 개최합니다. 경기 중북부에 자리한 도시 양주楊州는 조선시대부터 한양을 보호하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동북방으로 뻗은 길이 모이는 교통의 요지였기에 사람이 모여들고 장시가 번성한 곳이었습니다. 양주 지역의 주역인 양주 사람들이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소장품과 양주에 대한 기록들, 발달된 장시 관련 자료 등 다양한 자료들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가 양주에 대한 폭 넓은 이해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1부 양주에 들다 조선시대의 양주는 오늘날의 서울 북동부 일부와 의정부시, 동두천시, 구리시, 남양주시, 고양시 일부와 연천군 일부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으로, 당시 지방의 독립적 행정 구역 단위인 목牧으로 구분되어 양주목楊州牧이라 불렀습니다. 한양의 북쪽 관문이었기에 지리적으로는 도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평지와 산지가 고루 발달되어 있어 국가가 관리하는 말 목장과 왕실의 능陵이 위치하는 등 중앙정부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2부 양주에 살다 양주는 한양과 거리가 가깝고 교통이 편리했던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장이었습니다. 양주 땅을 직접 경작하는 토착 농민은 물론 물자를 유통하고 판매하던 상인들, 그리고 한양에 관직을 둔 관리들이 정착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양주를 구성하였습니다. 기후가 온화하고 토지가 비옥한 양주는 평지와 산지를 활용한 농업이 발달하였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밤과 잣이 훌륭하고, 오곡, 조, 메밀, 뽕나무 등이 특산품이라 하였습니다. 양주에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집안에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각종 문서와 생활용품, 그리고 집안의 혼인과 상사喪事에 대한 소소한 기록들까지 다양한 자료들이 소중히 보관되어 있습니다. 3부 양주에 모이다 경기 북부의 중심에서 동북부와 남부 지역을 연결하는 관문이었던 양주는 물류의 중심 역할을 하였습니다. 양주내 가마터에서 생산되는 도기와 자기, 상품上品으로 여겨지던 양주산 뽕잎과 밤 등의 농산물도 활발히 거래되었는데, 양주 내에만 대단위 장시가 일곱 곳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누원점樓院店의 경우 물산 유통의 중심이었는데, 한 예로 함경도 연안에서 잡은 명태를 말려 운송할 때 누원점을 거치지 않고서는 한양으로 들어올 수 없다 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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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관람안내

금일 관람시간

09:00 ~ 17:00
  • 3월 ~ 10월 관람시간 09:00 ~ 18:00
  • 11월 ~ 2월 관람시간 09:00 ~ 17:0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문의전화
031-8082-4187

역사속에 살아숨쉬는
회암사지박물관

고려 말·조선 초 최대 왕실사찰이었던
회암사의 역사와 위상을 지금 경험해보세요.

왕실문화와 선종사원을 증명하는 양주 회암사지

고려 말‧조선 초 최대 왕실사찰이었던 양주 회암사의 역사와 위상을 지금 경험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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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온라인서명
/14세기 불교 선종 문화의 전형!
/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온라인서명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참여방법]
① 핸드폰 카메라 켜기
② 위 QR코드를 카메라 중앙에 위치 시키기
③ 표시된 알림 주소를 눌러, 서명운동 참여
/QR코드(링크:https://www.yangju.go.kr/www/addOnlineSignView.do?key=4088&gubun=CULTURE)
/자세히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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