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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암사지

인물


 지공선사 指空禪師(Great Master Jigong), 나옹선사 懶翁禪師(Great Master Naong), 무학대사 無學大師(Great Master Muhak)

지공선사 指空禪師 Great Master Jigong

지공은 인도의 승려로 법명은 디야나바드라(Dhyanabhadra, 提納薄陀, 禪賢)이다. 8세 때 나란타사(Nallanda, 那爛陀寺) 율현(律賢)에게 출가해 19세에 졸업하고 인도 각 처와 원(元)의 수도인 대도(大都)를 거쳐 고려의 개경·금강산·회암사 등에 머물며 불법을 전파했다.
이 후 다시 원의 대도로 돌아가 법원사 (法源寺)에 머물렀다. 지공은 고려 말, 조선 초 불교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당시 불교의 정통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나옹선사 懶翁禪師 Great Master Naong

나옹의 성은 아(牙)씨, 속명은 원혜(元惠), 휘는 혜근(慧勤)이다. 나옹과 강월헌(江月軒)은 호이고, 시호는 선각(先覺)이다.
충혜왕 1년(1340) 출가한 뒤 회암사에서 수도하며 깨달음을 얻고, 충목왕 3년(1346)부터 원의 법원사(法源寺)에서 지공에게 수학했다. 이후 15년의 유학생 활을 마치고 고려로 돌아와 주요 사찰의 주지를 역임하고 회암사의 주지가 되어 중창불사를 단행했다.
나옹은 전통적인 간화선(看話禪)을 바탕으로 임제종(臨濟宗)의 선풍(禪風)을 도입해 고려말 침체된 불교계를 일신시키려고 노력했다.

무학대사 無學大師 Great Master Muhak

삼기(三岐: 합천 삼가면) 출신으로 속성은 박(朴)씨, 휘는 자초(自超), 당호는 계월헌(溪月軒)이다.
충혜왕 5년(1344) 출가해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 불법을 배우고, 공민왕 2년(1353) 원의연경(燕京)으로 가 지공과 나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조선건국 후 왕사가 되어 회암사에 거처했다. 태조 6년(1397) 왕명으로 회암사 북쪽에 수탑(壽塔)을 세우고, 1402년 회암사 감주(監主)가 되었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을 통치이념으로 하는 조선에서도 회암사는 무학이 주석함으로써, 최고의 왕실사찰로서 위상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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