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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신건강에세이] 하늘에서 떨어진 소녀
내용 2015년 5월 29일 오후, 워싱턴 주 타코마 시의 한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는 첼시 부인은 출근을 위해 자가용인 2001년도 니싼 앨티마에 몸을 실었다. 자주 지각을 하는 관계로 그날따라 집에서 약 30분쯤 일찍 떠났다. 국도 I-5에 들어서자 그녀는 시속 약 65마일 정도의 속도로 차를 몰았다.

한 육교 밑을 통과하는 순간 그녀는 차 앞에 장발의 검은 포니테일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눈을 들어 주목해보자 그것은 육교에서 추락하고 있는 한소녀의 몸통이었다. 충격으로 인해 차체가 찌그러지고 앞과 뒤의 유리창이 박살났지만 다행히 소녀의 몸통은 뒷좌석 위로 떨어졌기 때문에 첼시 부인은 부상을 입지 않았다. 소녀의 신체는 튕겨나가 땅에 떨어졌다. 너무 순식간에 발생한 사건인지라 첼시 부인은 운전대만 세게 움켜쥔 채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도 못했다, 몇 십 피트쯤 지나 차를 세웠지만 그녀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전화로 남편을 불러내어 두서도 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마침 지나가던 한 남자가 자기 차를 세우고 그녀에게 다가와 망가진 차문을 열고 그녀를 차에서 끌어내리고 경찰이 도착하기까지 안심시켜 주었다. 추락한 소녀는 급히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24시간 안에 사망했다.

13세에 불과한 이자벨이란 소녀였다. 약 일주일 전에 소녀는 남자친구에게 야하게 차린 자신의 사진을 스마트 폰으로 보낸 적이 있었다. 보통 때에도 자주 반항하던 그녀를 아버지는 머리 일부를 자른 다음 비디오로 그 광경을 찍었다. 땅에 흩어져 있는 검은 머리카락을 비추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이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냐?” “아니요.” “벌써 몇 번째나 주의를 주었어?” “자주요.” 이 영상을 통해 그녀에게 수치감을 줌으로써 반항하는 행동을 교정하기 위함이었다.
동서고금을 통해 수치심을 유발하여 행동을 교정하려는 시도는 자주 있었다. 어릴 때 오줌을 싸면 키를 쓰고 이웃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오게 하는예전 풍습이 그것이요, 소설 ‘주홍 글씨’에서 범죄를 지은 여주인공 가슴에 간통을 의미하는 ‘A'자를 지우게 한 것도 그런 의도에서였다. 동양에서는 일종의 범법자 얼굴에 범죄 내용을 뜸을 뜬 것도 수치감으로 인해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데 이자벨의 경우 누군가가 이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기 때문에 그 내용이 무한정으로 퍼져나갔고 잠시간 만에 같은 학교 학생들의 조롱 대상이 되었다.
지난 몇 년간 동영상을 이용하여 청소년들에게 수치심을 유발해서 행동을 교정하려는 시도는 자주 있었다. 이들이 반항한다고 해서 때리거나 집에가두면 아동학대로 기소되어 감옥에 가고 아이들의 양육권도 읽게 되는 것이 미국이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말로 교정한다고 해도 반항적인 청소년들은 부모의 조언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오히려 반발해 마약, 폭력, 섹스 등을 공공연히 자행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수치심유발인 것이었다.

요즈음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쏘시얼 미디어에서는 다음 같은 장면을 가끔씩 볼 수 있다. 대부분 청소년들이 길거리에 서서 이런 팻말을 들고 있다. “나는 거짓말쟁이며 도둑입니다. 나는 망조에 들었어요. 내가 자라면 감옥소에 갈 것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울고 있으며 어떤 아이들은 무표정하다. 부모를 옹호하는 사인도 있다. “어머니는 잘되라고 가르쳤지만 실망만 시켜드려 부끄럽습니다.” 행인들의 동참을 권하는 메시지도 있다. “나는 학교에서 급우들을 왕따시키는 왕초입니다. 내 행동이 싫으시면 경적을 눌러주세요.”

일반적으로 말해 청소년들에게 수치심을 유발해 행동을 교정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 사람이 수치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인격이 발달할 시간이 필요하다. 자부심, 자존감, 자신감,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 등이 자라야한다. 이들을 관장하는 전두엽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청소년기에 어른들이 수치심을 느낄 상태에서 아이들은 분노, 우울, 기대 못한 행동, 삐뚤어진 행위를 행하기 쉽다.

한편 이 사고의 생존자인 첼시 부인은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차에서 튕겨 나온 이자벨의 작은 몸통, 휘날리던 검은 머리카락은 그녀의 기억에 깊숙이 각인되었다. 매일 밤 눈물로 지새운다. 평소 말이 많던 그녀는 말수가 줄어들었고 모든 것이 마비된 느낌이다. 의사는 그녀에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이 있다고 진단했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전문보기 – 샌프란시스코 중앙일보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3708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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