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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도지정 문화유산


안표 초상화 및 교지 1
안표 초상화 및 교지 2
안표 초상화 및 교지 3
안표 초상화 및 교지 4
안표 초상화 및 교지
추천수3
  • 주소

    경기 양주시 회암사길11 회암사지 박물관

  • 종별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 연락처

    031--

  • 홈페이지

상세보기

안표(1710~1773)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1710(숙종 36)∼1773(영조4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정숙(定叔). 안상억(安相檍)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목사 안종해(安宗海)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봉직하다가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었고, 1763년에 헌납(獻納)이 되어 장령(掌令)을 거친 뒤, 1764년에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1765년에 사간·집의(執義)·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었는데, 마침 제주도에 기근이 들어 양리(良吏)를 뽑아 보내야 했다. 이에 대신들의 추천을 받아, 친히 어명을 받고 가서 그 폐(弊)를 없애고 화합정치를 잘 했다. 그러나 옥사(獄事)에 위반된 점이 있어 파직당하였다. 중앙으로 돌아오려고 하자, 그곳 백성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어 1767년에 형조참의·대사간이 되었다. 왕이 숭정문(崇政門)에서 조참(朝參: 매월 정기적으로 임금에게 백관들이 문안을 드리고 정사를 아뢰는 일)을 행할 때, 이에 불참한 위율(違律)로 해남현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1개월 뒤 다시 복직되고, 대사간·병조참의 등을 거쳐 여주목사를 지냈다.

초상화는 화기가 없어 정확한 제작연도는 알 수 없으나, 정교한 필치와 장황의 모습 등을 볼 때 조선시대 초상화의 정교함이 절정에 달한 18세기 후반 화풍의 전형을 보여주는 매우 높은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안면과 흉배의 학 모양의 묘사가 매우 정교하게 표현되어, 영조 대의 특징인 사실적인 묘사가 잘 나타나고 있으며, 영정함 또한 함께 보관되고 있다.

교지는 안표가 1754년 증광문과에 급제할 때 받은 홍패로 통덕랑 안표가 문과 병과 제9인으로 급제하였다는 내용이다.(건륭19년 윤4월11일)

이용안내

입장료: 없음
주차시설: 없음
장애인 시설: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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