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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도지정 문화유산


이준 선생 묘 1
이준 선생 묘
추천수146
  • 주소

    경기 양주시 남면 신산리 산1-1

  • 종별

    경기도 기념물 

  • 연락처

    031--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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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이준(1545~1623)의 묘지이다. 선조 1년(1568)에 병과에 급제한 뒤 진주목사, 의주목사 등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광해군 7년(1615)에는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선조 22년(1589) 정여립 모반사건 때 죄인을 다스리는 공을 세워 전성군에 봉해졌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중국 명나라 군사의 군량미 조달 책임을 맡기도 했다.묘는 부인의 것과 함께 쌍분으로 되어 있고, 봉분의 아랫부분은 화강석으로 둥글게 둘렀다.

묘의 좌우에는 문인석 1쌍과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망주석(望柱石) 1쌍이 있다. ① 사묘 :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준은 본관은 전주이며 유정의 아들이다. 선조 1년(156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주서와 정언을 거쳐 선조 14년(1581) 헌남이 되고 이어 진주목사, 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선조 22년(1589) 정여립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도승지로서 죄인을 다스리는데 공을 세웠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군사의 군량미 조달책임을 맡았으나 병으로 은퇴하였다. 그 위 한성부좌윤, 춘천부사를 거쳐 예조,병조의 참판을 지내고, 선조 33년(1600) 대사간이 되었으나 북인 홍여순의 일파로 몰려 한때 파직되었다.

그 뒤 안동부사, 경주부윤 등의 지방관을 거쳐 광해군 때 좌참찬, 형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광해군 7년(1615) 개성부유수가 되었다. 이어 이조판서에 이르렀으나, 이이첨, 정인홍 등 대북의 일파가 계축옥사를 일으키고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정사를 어지럽히자 벼슬을 버리고 은퇴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②묘는 남면중학교 앞에 있는 도로 왼편의 성창화성 공장의 담장을 따라 난 샛길로 약 400m쯤 올라간 지점에 위치한다. 이준의 묘 앞에는 신, 구 묘비가 2기 있고 상석, 향로석 및 동자석, 문인석, 망주석 각 2기가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묘는 백색 화강암의 장대석 9매를 이용하여 원형의 호석을 둘렀으며, 크기는 높이 190cm이다.

이용안내

입장료: 없음
주차시설: 없음
장애인 시설: 없음
기타 관광정보 및 외국어 안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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