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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람 회암사 262
- 전시장소 2층 기획전시실
- 전시기간 2024-09-24 ~ 2025-02-02
- 참여작가
- 관람료 무료(박물관 입장료 별도)
- 주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 문의전화 031-8082-4174
상세내용
*본 전시는 2024년 9월 11일(수)부터 22일(일)까지 사전운영함을 알려드립니다.
**전시 연출과 장비 점검으로 인하여 소음이 발생할 수 있으니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전시개요>
양주 회암사지 유적은 동아시아 불교에 유행했던 선종사원의 전형을 증명하는 가치가 인정되어 지난 202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불교유산입니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중기까지 융성하게 번영한 회암사는 현재 터만 남아 있는데, 옛 회암사의 모습을 증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자료가 바로 목은 이색이 지은 「천보산회암사수조기」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천보산회암사수조기」의 내용을 소개하고, 그 안에 담긴 옛 회암사의 모습과 세계유산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부>
고려 왕실이 지향한 이상적 도덕 정치 그 중심에 있던 회암사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불교를 억압하던 분위기 속에서도 자리를 굳게 지켰습니다. 태조 이성계와 효령대군 그리고 정희왕후까지 많은 왕실 인사들이 회암사의 중창을 주도하며 회암사는 전국 제일의 대가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2부>
현대 우리나라의 주요한 사상으로 자리한 유교의 출발점은 고려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원나라에서 유학하던 고려의 학자인 안향(安珦, 1243~1306)은 고려에 성리학을 도입했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시대가 되자 성리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변모하면서 불교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사대부 중에서는 여전히 불교에 심취한 사람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요 불교계 인물들과 학문적으로 교유하였고, 서로의 사상을 존중하며 조선의 불교 부흥에 기여하였습니다.
<3부>
기록을 남기는 것에 소명 의식을 가진 목은 이색은 성리학을 근본 이념으로 삼은 성리학자이자 누구보다 불교에 대해 깊게 이해한 고려의 대학자였습니다. 목은 이색은 평소에 친분이 있던 회암사의 주지 윤절간의 부탁을 받아 262칸에 달하는 회암사의 전경을 글로 남겼으니, 바로 「천보산회암사수조기」입니다. 옛 회암사의 건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천보산회암사수조기」의 글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대가람의 전경을 마치 그려내듯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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