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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소통

자유게시판


작성일 200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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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0여 년의 노예생활 끝내고 따뜻한 사람품으로 돌아온 이흥규 할아버지
작성자 이용준
내용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보고 싶은 사람도 없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이흥규 할아버지. 50여 년간 아무런 대가 없이 노동을 했고, 인간다운 삶을 전혀 살지 못했던 탓에 ‘노예 할아버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성의 한 요양원에서 70평생 처음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 할아버지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 할아버지의 누더기 팬티


tv 화면에 비친 할아버지의 모습은 21세기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형의 손에 이끌려 남의 집에서 머슴처럼 살아온 50여 년. 건강했을 청년은 어느새 허리가 90도로 구부러지고, 삶의 풍파에 찌들대로 찌든 70대 할아버지가 됐다. 하지만 ‘주인아저씨’라고 부르는 60대 노인에게 할아버지는 ‘하인’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었다.



“힘이 나보다 더 세요. 삽질을 얼마나 잘하는대요”라며 밭에 쭈그리고 앉아 일만 하는 70대 노인에 대해 심드렁하게 이야기하는 가해자의 모습은 tv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가해자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했고, 해놓으라는 일을 마치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앞이 잘 안 보일 만큼 어두워진 밤이 되어서야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 그가 하루의 땀을 씻어낸 곳은 집 목욕탕이 아니라 논 옆으로 흐르는 냄새나는 도랑이었다. 집이 아니라 도랑에서 씻는 것이 할아버지에게는 당연한 일인 듯 보였다. 손발을 깨끗이(?) 씻은 후 할아버지는 거리를 헤맸다. 그러다가 길에서 쓰레기통을 발견하고는 뚜껑을 열고 허겁지겁 버린 음식을 먹었다. 할아버지를 촬영 중이던 방송국 pd가 놀라서 “그것 버리세요. 제가 사드릴게요”라고 했지만, 여전히 쓰레기통에서 꺼낸 음식을 신문지로 꽁꽁 싸서 버리질 못했다.



방송국 pd가 사준 빵과 우유를 손에 들고 돌아간 할아버지의 집은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온기라고는 전혀 없는 폐가로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변변한 이불과 옷가지 하나 없고 온갖 쓰레기로 뒤덮힌 방이 할아버지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이런 곳에서 추운 겨울은 어떻게 지냈을까? 얼어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가해자는 할아버지의 방을 보여줌으로써 그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사는 형상이 아니었다. 비 오는 날 할아버지는 가해자 집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우산을 쓰고 걸어갔다. 비를 쫄딱 맞고 할아버지가 밥을 먹으러 들어간 곳은 부엌이 아닌 다용도실이었다. 김치와 국, 그리고 밥만 차려져 있는 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허겁지겁 밥을 먹던 할아버지.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인권이 할아버지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50여 년간 일한 대가는 차치하고라도, 2000년 10월부터 정부에서 준 기초생활 보조금 28만원을 한 번도 손에 쥐어보질 못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21세기판 ‘머슴’이었고 ‘노예’였다. 할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본 주민들의 무관심도 할아버지의 노예 생활을 50여 년간 지속시키게 했다.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 이흥규(73) 할아버지의 사연은 지난 5월 sbs tv ‘sos 긴급출동’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할아버지의 사연을 취재한 김형민 pd는 “할아버지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속이 상해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고 할 정도로 실제 상황은 상상 이상이었다. 취재팀이 요양원으로 옮기기 위해 할아버지의 옷을 갈아입히는 모습은 더욱 충격이었다.







‘누더기’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진 할아버지의 팬티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갈아입은 적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사연은 취재진과 시청자들을 수없이 놀라게 했다.



허리 수술로 굽었던 허리 펴고 살게 돼


할아버지의 사연이 방송된 후 사회적 반향은 뜨겁기만 했다. 네티즌들은 할아버지를 노예 취급해온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했고, 할아버지를 방치한 사회복지사에 대한 질타도 쏟아졌다. ‘자신의 인식 부족으로 이런 일이 빚어졌다’고 때늦은 후회를 한 가해자는 구속됐고, 정부에서 나온 기초생활 지원금 1천3백여 만원도 가해자로부터 회수했다. 할아버지가 살았던 화성시 시장은 시청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고 요양원에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다. 손학규 경기도지사 역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안을 강구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이흥규 할아버지는 지난 50여 년간의 암흑생활을 털고 요즘 경기도 안성의 브니엘요양원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 할아버지의 평생 고생을 보답받지는 못하겠지만, 지금이라도 암흑생활에서 구출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을 찾았을 때는 집중 치료실에 누워 있었다. 요양원에 온 이후 상태가 나빠진 것이 아니라, 얼마 전 서울 병원에서 받은 허리 수술 때문이다. 90도로 구부러졌던 허리는 수술 후에 완전히 펴졌고, 수술 경과가 좋아서 2주 정도 지나면 편히 돌아다닐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요양원에서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인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 요양원에 왔을 때는 먹을 것만 보면 정신없이 먹어대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과자와 같은 군것질거리를 항상 입에 물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 끼 밥을 꼬박꼬박 먹고 군것질거리는 입에 잘 대지 않는다. 마음이 많이 안정된 듯 보였다.



그리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 눈에 맞춰 안경도 새로 맞추었고, 옷과 신발도 본인이 직접 골라 살 수 있게 됐다. 난생 처음 통장도 만들었고, 그동안 가해자의 손에 있었던 주민등록증도 되찾았다. 안성시 부녀회와 사회단체협의회에서는 할아버지에게 보청기를 해주기로 했다. 또 한 치과에서는 음식을 전혀 먹을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다 빠져버린 치아를 대신해 틀니도 무료로 맞춰줬다.



방송을 보고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선물이 할아버지의 사물함을 꽉 채우고 있었다. 누더기가 된 팬티가 충격적이었는지 속옷을 보내온 사람들이 많았다. 과자와 우산, 그리고 책 등 다양한 물건이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을 본 한 학생은 미니 카세트와 찬송가 테이프를 보내주기도 했다. 자신의 용돈 4천60원을 보낸 초등학생도 있어 요양원 사람들을 눈물짓게 하기도 했다.



“많이 나아지셨어요. 처음에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이야기도 전혀 하지 않으셨는데 요즘은 이야기도 잘하세요. 요양원에는 재활 프로그램으로 노래방을 운영하는데, 할아버지가 ‘백마강’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세요.”(브니엘요양원 박진하 원장)


하지만 아직도 이흥규 할아버지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 박진하 원장이나 요양원의 사회복지사와는 이야기를 잘하지만 낯선 사람과는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기자 역시 할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할아버지 요즘 몸은 어떠세요?”


“몸이 많이 아파요.”



“밥은 잘 드세요?”


“네.”



“보고 싶은 사람 없어요?”


“없어요.”



“가고 싶은 데 있어요?”


“그런 것 없어요.”



“불편하신 곳은 없어요?”


“없어요.”



할아버지는 낯선 사람의 질문에 ‘예’ ‘아니오’로 대답할 뿐이었다. 할아버지의 모습을 촬영하는 사진기자와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50여 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받았던 고통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새 인생의 걸음마를 시작했다. 돈에 대한 개념도 새롭게 배우고 있고, 텃밭에서 자신만의 농작물을 키우기도 한다. 시장에서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돈을 주고 사는 훈련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에 관한 몇 가지 소문


방송을 통해 할아버지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몇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먼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형에 대해서다. 왜 할아버지를 남의 집에 맏겨놓고 평생 돌보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혹자는 할아버지가 정신지체를 앓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진찰한 의사는 정신지체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의사가 정신지체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약간 어눌하고 순박했던 청년이었던 것 같아요. 할아버지 형이 돌아가셔서 모든 것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하네요. 정황을 살펴보면 형 입장에서는 모자란 동생이 가해자의 집에서 일을 하면 평생 밥은 굶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도 어떻게 한 번도 살펴보지 않았는지 아쉽기는 합니다.”(박진하 원장)



또한 90도로 구부러진 할아버지의 허리가 오래된 노동의 후유증이거나 15년 전 당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할아버지가 살았던 동네 주민들은 ‘15년 전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증언을 했다. 방송 취재팀은 병원과 보험사 그리고 경찰서 기록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할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인한 보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그 보상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가해자는 할아버지의 가족에게 줬다고 증언했고, 가족들은 가해자에게 보상금을 돌려줬다고 취재팀에 말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를 취재했던 pd는 한 인터뷰에서 “가족에게도 분명히 일부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밝히기 어려운 가족사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tv에서는 할아버지가 취재팀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가족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15년 전에 이미 가족을 만났을 수도 있다. 박진하 원장 역시 “의문은 가지만 확실한 것은 누구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여전히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흥규 할아버지. 현재 할아버지의 상황에 대한 몇 가지 의혹이 있지만,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이흥규 할아버지는 70대가 된 후에야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 노예 같은 삶을 살다가 이제야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된 할아버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앞으로의 삶을 누리기를 기원한다.



interview


평생 무료로 이흥규 할아버지를 돌봐주는 브니엘요양원 박진하 원장


“할아버지는 아직도 ‘주인아저씨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 4월 24일 밤 10시, 박진하 원장은 방송국 pd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상황이 좋지 않은 무의탁 노인이 있는데, 평생 무료로 받아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박 원장은 예전부터 무의탁 노인을 돌봐온 경험이 있기에 큰 고민 없이 할아버지를 맞았다. 등이 90도로 굽었지만 지금까지 돌봐온 여느 무의탁 노인과 비슷한 상황인 줄 알았다. 하지만 5일 후 tv 화면에 비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 박 원장은 너무 놀라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박진하(47) 원장과 이흥규 할아버지는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왔을 때 어떤 모습이었나요?


사람들이 옷도 갈아입히고 목욕도 시켜서 외형적으로는 그다지 특별한 점이 없었다. 다만 사람들과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고, 사람들을 경계하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이상했다. pd가 대충 이야기를 해서 ‘불쌍한 노인이구나’라는 생각만 했지, 할아버지에게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방송을 보고 너무 놀라서 밤새 한숨도 못 잤다.



할아버지의 건강은 어떤가?


대체로 건강하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추운 겨울을 지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지냈기 때문인지, 귀 한쪽은 딱지로 꽉 차있었다. 파내려고 했는데, 아프다고 하셔서 약물로 녹이는 중이다.



할아버지에게 약간 치매 기운이 있다고 하던데?


치매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술술 외우고 있다. 찬송가도 곧잘 따라 부르고, 노래방에서는 ‘백마강’이라는 노래를 거침없이 부른다. 보통 치매가 있는 노인들은 포만감이 없어서 먹는 것에 집착 하는데, 할아버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 밥을 잘 드시니까 요즘은 군것질도 잘 안 하신다.



할아버지 사연이 방송된 후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운데 어느 정도인가?


방송 후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운 걸 보고 나도 놀랐다. 방송 후 요양원 카페 홈페이지에 무려 11만 명이 다녀갔다. 그렇게 많은 네티즌이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선물로 할아버지 사물함이 꽉 찼다.



할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나?


사회성을 배우는 재활 훈련을 받고 있다. 50여 년간 그렇게 살아서 사회성이 전혀 없다. 통장이나 주민등록증이 뭔지도 모르신다. 사회복지사와 함께 통장도 만들고, 시장에서 할아버지가 직접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훈련도 받았다. 치매 예방을 위해 미술 치료를 받기도 하고, 텃밭에서 직접 채소나 과일을 기르고 있다. 얼마 전에 허리 수술을 받으셔서 허리가 쭉 펴졌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어도 대답을 잘 안 하시던데?


아직도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 50여 년 세월의 흔적이니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도 이야기 도중에 “주인아저씨 집에 돌아가서 일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봤을 텐데, 이흥규 할아버지에 대한 느낌은?


지금까지 행려 노인을 몇 분 돌봐드렸다. 그중 박순자 할머니는 가족 확인도 안 되고 다리 밑에서 거지로 살았던 분이다. 그래도 이흥규 할아버지의 모습보다는 훨씬 좋았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할아버지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무척 큰데 부담은 없는지?


물론 부담이 크다.(웃음) 할아버지가 이곳에서 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좋은 친구를 사귀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셨으면 한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목사인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됐는지?


1990년에 안성에 교회를 개척했다. 우연한 기회에 안성천 다리 밑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을 보살폈다. 이런 일이 소문이 나면서 구청이나 경찰에서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을 많이 보냈다. 그 후 현재의 브니엘요양원 자리에 작은 천막을 지으면서 요양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노인들이 대부분이라서 기저귀도 갈아드려야 하고, 관장을 직접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힘들다. 교인들의 도움으로 지난해 12월에 지금의 건물을 건축했다. 자원봉사자까지 21명이서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 현재 90여 명의 노인들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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